Photoessay

가을 유서..

hanulche 2015. 1. 25. 20:53

 

 


 
 

 

 
 
가을 유서..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