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essay

갈참나무 숲으로 가자 / 은숙

hanulche 2019. 11. 11. 15:10

 

 

 

갈참나무 숲으로 가자 / 은숙 

 

나의 사랑은 늘 불온하였다

견뎌내거나 견뎌내지 못한 시간이

시월의 저녁 아래 낮게 엎드리고

갈참나무 매달린 저 작은 열매가

이 계절의 정수리에 아프도록 빛난다

굳어버린 생채기만 단단한 옹이로 키우며

어설픈 열매조차 맺지 못한 내 불온한 사랑은

저녁 갈참나무 숲에 와서 무릎을 꿇는다

그대여 나여 지나간 사랑이여

갈참나무 저 작은 도토리처럼

떫은 몸 스스로를 몇 번이고 씻어내며 지워

거친 밥상 따뜻하게 채우는 양식이 되거나

해거름 쓸쓸한 가지로 날아드는 새에게

푸근한 둥지 자리조차 내어주지 못한

척박한 묵정밭의 생애여

시월의 저녁 지금도

붉나무 잎새는 눈부시게 더욱 붉어지고

넉넉한 과즙의 사과 익어가며 수런거리는데

후줄근히 구겨진 내 사랑의 허물은

갈참나무 숲에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