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essay
기도 ...정채봉
hanulche
2015. 1. 25. 20:15
기도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정채봉 내가 지극히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이 순간에 한줄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서 칼날을 느끼는 수도자가 있으며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진통을 참아내는 산모가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는 아픔에 눈물 짓는 연인의 비통이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버린 물줄기를 되돌려볼까, 하고 음모를 꾸미는 무리가 있으며 힘차게 들어올리는 지휘자의 지휘봉이 있으며 농간에 녹아나서 그의 사인 하나로 몰락하고 마는, 그 사인이 지금 나고 있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환자는 이 순간에 이렇게 한탄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하느님, 조금만, 조금만 더 내게서 죽음을 유예시켜 주소서. 할일없이 무료히 앉아 있는 사람이여! 내게 그 시간을 적선해 주소서." 바로 지금이 나의 이 세상 전부이다. 깨어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