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essay
새와 나무 /류시화
hanulche
2015. 1. 24. 13:09

새와 나무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바람 부는 날의 풀 /류시화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내 안의 물고기 한 마리 /류시화 나는 내 안에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안의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나는 물을 마신다. 내 안의 물고기를 위해. 내가 춤을 추면 물고기도 춤을 춘다. 내가 슬플 때 물고기는 돌틈에 숨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나를 응시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거.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물고기를 행복하게 하는 일. 나는 내 안에 행복한 한 마리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