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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hanulche 2015. 1. 26. 07:36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 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