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essay
오후 / 안시아(나희덕)
hanulche
2018. 7. 13. 08:03
오후 / 안시아
책상 끝 동전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제법 멀찍한 곳까지 온 몸으로 또르르 길을 낸다
마지막 힘을 다해 원을 그리다가
또 하나의 원으로 끝내 눕는다
연산기호같이 셈해지던 나날들,
창틈으로 햇살이 아득히 녹슬어 있는 기억을 비출 때
동전은 어떤 해답으로 이곳까지 거슬러 왔을까
손끝으로 동전을 줍다가 그만 놓치고 만다
바닥의 중심을 퉁겨내며 굴러가는 동전,
때론 가장 절박한 순간이 生의 궤적을 그린다
가만히 주워 올린 손끝에서 또다시
낭떠러지가 되는 오후,
한껏 차 오른 봄날이 위태롭다
컴퓨터 모니터는 이따금씩 보호색을 띄며
갖가지 모양의 도형을 빙글빙글 돌린다
책상 귀퉁이 싸인펜이 휴지뭉텅이에
검은 노을을 풀어낸지 얼마나 되었을까
창 밖, 자전거 바퀴가 길을 일으켜 세우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2003년 현대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