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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의 이유/류시화

hanulche 2017. 5. 7. 10:17

 

 

 

 

 

 

 

 

 

 

파문의 이유

 

                  류시화

 

 

 

 

나는 보았다

눈이 내려 이상하게 환한 밤

모든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있는데

개암나무인지 혹은 떡갈나무인지

오열하는 나무 하나만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서 그 눈 녹이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젖은 불이 몸 안에서 타는 것처럼

지독한 신열 속에서 꽃 한 송이 피어날 때

어디선가 상처 하나가 아무는 것을

무늬 중에 상처의 무늬가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나는 보았다

새의 화석을 품은 돌 하나

물살에 잠겨 노래할 때

강이 울음으로 타는 것을

그 울음으로 돌이 둥글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모든 억새들 바람에 몸을 누이는데

동행하지 않는 억새풀 하나

외곬으로 우는 풀벌레들 떨치고 일어나

전율하는 몸짓으로

그 바람 혼자서 맞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