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정채봉
내가 지극히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이 순간에
한줄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서
칼날을 느끼는 수도자가 있으며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진통을 참아내는 산모가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는 아픔에
눈물 짓는 연인의 비통이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버린 물줄기를 되돌려볼까, 하고
음모를 꾸미는 무리가 있으며
힘차게 들어올리는 지휘자의 지휘봉이 있으며
농간에 녹아나서 그의 사인 하나로 몰락하고 마는,
그 사인이 지금 나고 있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환자는 이 순간에 이렇게 한탄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하느님, 조금만, 조금만 더
내게서 죽음을 유예시켜 주소서.
할일없이 무료히 앉아 있는 사람이여!
내게 그 시간을 적선해 주소서."
바로 지금이 나의 이 세상 전부이다.
깨어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