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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박영근Photoessay 2015. 3. 19. 12:26봄비 / 박영근 누군가 내리는 봄비 속에서 나직하게 말한다 공터에 홀로 젖고 있는 은행나무가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힘든 네 몸을 내려놓아라 네가 살고 있는 낡은 집과, 희망 주린 책들, 어두운 골목길과, 늘 밖이었던 불빛들과, 이미 저질러진 이름, 오그린 채로 잠든, 살얼음 끼어 있는 냉동의 시간들, 그 감옥 한 채 기다림이 지은 몸 속의 지도 바람은 불어오고 먼데서 우레 소리 들리고 길이 끌고온 막다른 골목이 젖는다 진창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잇적 미소가 젖는다 빈방의 퀭한 눈망울이 젖는다 저 밑바닥에서 내가 젖는다 웬 새가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다 비 젖은 가지가 흔들린다 새가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