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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김기택Photoessay 2018. 7. 13. 07:55
화석
- 김기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등을 잔뜩 구부리고 얼굴을 책상에 박고 있다.
책상 위엔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두 손은 헤엄치듯 서류 사이를 돌아다닌다.
하루종일 쓰고 정리하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거북등 같은 옆구리에서
천천히 손 하나가 나와 수화기를 잡는다.
이어 억양과 액센트를 죽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화기를 놓은 손이 다시 거북등 속으로 들어간다.
때때로 그의 굽은 등만큼 배가 나온 상사가 온다.
지나가다 멈춰서서 갸웃거리며 무언가 묻는다.
등에서 작은 목 하나가 올라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갑자기 배 나온 상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목은 얼른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만 더 굽어져 자꾸 굽실거린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모래밭에서 한참 거북등을 굴려보다 싫증난 맹수처럼
배 나온 상사는 어슬렁어슬렁 제 정글로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등을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