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거울의 노래/이영혜
나, 얼마나 오래 잠들었었나요
폐허가 된 진흙더미 속에서도
내 안에 숨 쉬던 당신은 지워지지 않고
금 간 가슴팍엔 절망이 수수백번 얼었다 녹았지요
천 년만의 만남이었나요
안압지(雁鴨池) 연등 아래서 만난 당신
무엇인가 생각날 듯 말 듯 한참을 응시하다가
그냥 뒷모습이 되어버린 당신
목쉰 외침 들리지 않던가요
전장으로 말 달려간 화랑의 말방울소리를 기다리며
달빛 아래 탑을 돌던 소녀를 잊으셨나요
순금 허리띠를 두르고 금관을 쓴
연회장의 왕을 몰래 흠모하며
연꽃 만발한 월지(月池) 누각에서
비파를 타던 진골 여인을 잊으셨나요
연잎에 맺힌 푸른 물방울 끌어안고
천 년을 기다렸건만
다음 조우는 또 몇 생이 걸릴지 기약도 없건만
거울 속엔 그리움의 녹만 가득하고
도무지 나는, 당신에게 닿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내 슬픈 눈빛이 천 년 왕조의 보석임을
천 년을 달려온 별빛임을 기억해주세요
영겁의 기다림이면 어때요
언젠가 돌아올 당신 편히 들어앉을 수 있도록
말갛게 거울 닦아놓고
나, 다시 그 안에 당신만을 위한 연꽃을 피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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