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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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Photoessay 2020. 4. 10. 09:33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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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신경림Photoessay 2020. 4. 10. 09:19
신경림, 그림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멘 채 시적시적 걸어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주막집도 들어가보고 색시들 수놓는 골방문도 열어보고 대장간에서 풀무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아예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옛사람의 그림속에 갇혀버리면 어떨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의 그림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 오늘의 그림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메고 밤차에 앉아 지구 밖으로 훌쩍 떨어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Her Loveliness - Jim Chap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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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숲 / 김왕노Photoessay 2019. 11. 11. 15:34
내 안의 숲 / 김왕노 버려진 것들이 기다린다. 버려진 것들에게 기다림은 더 절실하다. 한때 비수였던 녹슨 칼은 풀에 가려서도 이제 자신을 주워들고 양파를 다듬을 손길이라도 기다린다. 제 안의 침묵으로 더 깊이 파 들어가다 어이 밖에 누가 없는가? 라며 숲을 출렁이게 한다. 숲 밖으로 두런거리며 한낮이 지 나가고, 버려진 자전거는 누군가 주워 고쳐서 타기를 바란다. 시간이 갈 수록 다시 햇살의 바퀴를 돌려 언덕을 넘고 싶은 희망이 벌건 녹으로 번 지고 있다. 한번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꽃이 유배의 자세로 피어 있다. 난중일기를 쓰다 가는 바람에 끝없이 흔들리며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울 먹임. 갈증으로 핀 저 이파리들, 저 서걱거림, 저 고요함이 숲을 푸른 융 단으로 짜고, 무성했던 기다림이 썩어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