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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나희덕Bookmark 2015. 1. 26. 21:50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바닥으로 문질러 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 거리다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 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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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Bookmark 2015. 1. 26. 21:28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 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A love IdeaKnopfler/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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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살지 말자Bookmark 2015. 1. 26. 20:58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부로 살지 않는 일. 그래, 함부로 살지 말자. 할 수 있는데 안 하지는 말자. 이것이 내가 삶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적극성이다. - 신경숙의《아름다운 그늘》중에서 - * 함부로 살지 말자. 가슴이 뜨끔해지는 말입니다. 지금 능히 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무심히나마 함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되돌아 보게 합니다. ♬...아담스//'거룩한 성' - 버로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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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영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중에서Bookmark 2015. 1. 26. 14:49
그리움의 간격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 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 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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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날들 / 김신회Bookmark 2015. 1. 25. 22:42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 변하거나 적응하거나 포기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 포기하기 싫어 전전긍긍하고 적응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해갔다 그러다 보니 결국 주위에서 듣는 말이라고는 '열심히 산다'가 고작인, 빠듯한 인생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그게 당연한 일상이라 믿고 살았다 또 나만 그런 것도 아니였다 서울에선 모두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하지만 노력 없이도 뭔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없이도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5년 만의 방콕 여행은 알려주었다 게을러지고나서야 알게 된 나의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일상 집으로 가는 길, 여행가방에 이 게으름을 조금만 싸가지고 갈 수 있다면 서울에서의 생활계획표에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가장 보통의 날들 / 김신회]..